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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브프라임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   [재테크/경제관련글들]   |  2008/09/23 02:36
18세기 초반 프랑스의 수많은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고, 재정 적자에 허덕이던 정부를 구원해준 '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존 로(John Law)는 1671년 스코틀랜드에서 많은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큰 부자로 태어났지만, 방탕한 생활로 젊은 시절에 재산을 모두 날렸지요. 더군다나 그는 결투에서 상대방을 살해한 혐의로 영국에서 수배되는 바람에 유럽을 전전하며 도박을 하여 먹고살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방탕한 기질과는 달리 선견지명이라고 할만한 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당시의 유럽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경제규모에 비해서 화폐를 만들 수 있는 귀금속이 턱없이 부족해지던 참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조국이었던 스코틀랜드에서는 그 정도가 퍽이나 심해서, 주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지경이었지요. 주화가 없으니 아무런 상품도 살 수 없고, 생산의 동기도 없고, 따라서 일자리도 없고, 경제도 침체되는 악순환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네덜란드만은 다른 유럽 각국들과는 달리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답니다. 그것은 1609년 암스테르담 은행에서 금으로 태환(兌換)을 보증하는 증서인 지폐(紙幣)를 최초로 발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지폐로 말미암아 네덜란드에서만큼은 통화량(通貨量)이 활발한 경제활동을 충분히 뒷받침해줄 수 있었던 것이지요. 존 로는 이 점에 착안하여서 파리에서 당시만 하여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미시시피의 서쪽 루이지애나 지방의 땅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금으로 바꾸어줄 수 있는 (태환가능(兌換可能)할 수도 있는?) 증서를 발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럽세계에서 최초로 발행된 ‘불환지폐(不換紙幣)’입니다. 물론 유럽세계 밖에서야 몽고지배하의 중국인 원(元)나라에서 이미 소금으로 태환되는 교초(交鈔)라는 지폐를 발행한 적이 있었지요. 그러나 이는 엄연히 소금과의 교환을 전제로 한 지폐였기 결코 불환(不換)의 화폐는 아니었답니다. 좌우지간 존 로의 이 참신하고 멋진 사기에 가까운 아이디어 덕분에 프랑스도 큰 호경기를 구가할 수 있었고, 당시 루이 14세 정부의 엄청난 재정적자도 간신히 매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이들을 ‘백만장자’로 만들어 주었으니 존 로는 착한 사깃군(?)이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이 대목에서 그의 욕심이 좀 과하였던 모양입니다. 지폐의 발행고가 지나치게 늘어나면서 인플레이션이 유발되었고, 사람들은 루이지애나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금으로 지폐를 바꾸어달라고 쇄도하게 되었지요. 당연히 존 로(John Law)는 외국으로 달아나버렸고, 그의 지폐를 받아서 백만장자가 되었던 이들도 쪽박을 차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세계최초의 불환지폐발행은 그 역사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사람들에게 '은행(bank)'에 대한 쓰디쓴 기억을 남긴 한 바탕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프랑스어에는 '은행'을 이야기하는 단어가 없답니다.

1929년의 뉴욕 주식시장 붕괴로 촉발된 대공황(Great Depression)을 극복하기 위하여 미국의 대통령 프랭글린 데오도어 루즈벨트가 뉴딜정책을 추진한 이래, 꽤 오랜 시간동안 서구 경제학의 주된 흐름은 ‘케인즈 경제학 (Keynesian Economics)'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세계의 경제를 주도하고 꾸준한 호황을 구가하도록 뒷받침하여준 이 이론은, 경제적 과정을 잠재 생산의 지속적인 성장으로 보는 18세기 후반 이후의 고전 경제학과는 달리, 상품에 대한 총수요를 강조하는 입장을 취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민간부문 못지 않게 공공부문의 중요성을 동시에 강조하여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강한 개입을 정당화 시켜주었습니다. 하지만 1차 오일쇼크의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시대를 거치면서 이에 대한 비판도 대두하게 됩니다. 즉,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만(Milton Friedman)이 주장한 통화주의(monetarism), 루카스 학파 (Lucas critique)의 합리적 기대이론 (rational expectations), 신고전주의 경제학 (New classical economics) 등 수요측면과 공공부문의 역할을 강조하였던 케인즈 경제학에 대비되는 공급측면과 민간부문의 자율을 강조하는 이론들이 출현한 것이지요. 이런 공급주의 경제학 이론들은 1970년대 후반부터 2008년 현재까지 특히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로 대표되는 미국 공화당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이론적 토대가 되어 왔습니다. 이 이론들은 공통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부문에 많은 자율을 주어서 공급자들과 생산자들에게 유리한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공급주의 경제학 (Supply Sided Economics)이라고도 불리웁니다. 실제로 지미 카터가 통화주의자인 폴 볼커(Paul Volcker)를 FRB 의장으로 선임한 이래, 알랜 그린스펀(Alan Greenspan), 현재의 벤 버냉키(Ben Bernanke)까지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미국 금융계를 주도하는 있는 이들의 면면이 모두 공급주의 경제학에 경도된 이들인 것을 보아도 이들이 현재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미국 경제를 주도하는 동안, 정부는 감세가 투자를 활성화해서 결국에는 세입도 증가할 거라는 이른바 래퍼효과(Laffer Effect)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감세를 감행하게 됩니다. 그런 조치들이 당시 정체상태에 있던 경제에 약간의 활력을 불어넣었을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뒤에 엄청난 재정적자와 20세기 초반수준으로 벌어진 미국사회의 심한 빈부차를 남기게 된 것만큼은 틀림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모순이 누적되어 폭발한 것이 2007년 상순에 표면화되기 시작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문제(subprime mortgage crisis)라 하겠습니다. 최근의 미국 금융시장을 돌이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게 만든 이 문제는, 약 30년간 정계와 학계를 지배해왔던 공급주의 경제학과 이에 바탕을 두고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영미식 자본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할 것입니다. 애시당초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여 균형을 이루는 시장’이라는 것은 경제학자들의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것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어느 쪽이 되었건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을 할 때에만 사회적인 낭비를 줄이는 균형을 이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첨단금융기법’이라고 주장하면서 ‘위험을 분산하였다’고 주장하였던 자산유동화증권(ABS, Asset Backed Securities), 부채담보부채권(CDO,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 신용 디폴트 스와프(CDS, Credit Default Swap) 등 파생금융상품들은 단지 위험을 전가하고 자산가치의 하락을 감추기 위해서 복잡한 수식과 도표로 포장한 ‘사기’일 뿐이었습니다. 마치 18세기 초반 존 로가 루이지애나의 묻혀 있을지 모르는 금을 담보로 지폐를 발행하였듯이, 갚을 능력도 없는 이들에게 함부로 돈을 빌려준 다음, 그 빚을 잘게 나누어서 여러 사람들과 세계 여러 나라에 마치 안전한 자산인 양 태연히 수수료를 챙기면서 판매를 한 것입니다. 이런 파생금융상품들의 문제점은, 만약 돈을 떼인다 하더라도 자신이 손해날 것이 없으니, 당연히 돈을 빌려줄 때에도 엄격하게 심사를 하지 않을 것이고, 채권의 회수를 위해서도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부실화하기 쉽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감추면서 열심히 돈장사를 하여서 제3세계의 투자자들을 등친 투자은행들의 도덕적인 해이(moral hazard)가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부실사태를 가져오고, 종국에 가서는 월가 자체의 붕괴를 불러일으킨 것이지요. 원래 돈이란 빌려준 사람이 가장 열심히 되찾으려고 노력을 하여야 하고, 빌려줄 때에도 신중하게 빌려주어야 하는 법인데, 그게 되지 않았으니 이 꼴이 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공급주의 경제학자들이 그렇게도 외쳤던 '규제의 철폐'가 시장 참가자들의 도덕적인 해이를 불러왔고 종국에는 그 시장 자체를 무너뜨리고 만 것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공단이나 각종 금융기관들도 그런 말도 안되는 ‘사기 종이쪽지’를 안전하다고 믿고 수백억원씩 국민이 맡긴 돈을 들여서 사들여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점입니다. 그 책임도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그들이 루이지애나에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금을 믿고 존 로가 남발한 지폐를 받아 모았다가 알거지가 된 프랑스 사람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런 사기를 친 존 로와 자신들은 전혀 노동을 하지 않고, 따라서 진정한 가치가 있는 재화나 용역을 전혀 생산해내지 않으면서 순진한 제3세계 사람들의 등골을 빼먹는 미국 금융자본가들도 또한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는 미국의 금융자본들이 1997년 IMF 외환위기때 우리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였는지 벌써들 잊어서는 안됩니다. 고작 수백억 달러를 빌려주면서,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망하는 것을 전혀 정부가 나서서 구제하지 못하게 강제하였습니다. 공적자금의 투입도 성업공사를 통한 간접적인 방법만 가능하였지, 정부가 직접 기업의 주식을 인수하거나 하는 것은 ‘시장의 질서에 어긋난다’고 하여서 엄격하게 제한하였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직장을 잃고, 가정이 붕괴되고, 재산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았습니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피눈물을 흘려야만 하였습니까? 그러던 미국의 금융자본들이 자신들의 잘못으로 망하게 된 데 대해서는 정부에게 태연히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서 구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가 그런 파렴치한 짓을 당당하게 하는데도 세계 어떤 나라도,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왜 ‘너희가 하면 로맨스고 우리가 하면 불륜이냐?’고 외치고 있지 않습니다. 도대체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특히 미국 금융자본에게 뼈아픈 굴욕을 당하였던 우리 정부라면 당연히 한 마디라도 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요?

 

좌우지간 이제 사람들이 이른바 네오케인지언이라고 부르는 콜롬비아 대학의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프린스톤 대학의 폴 그루그만(Paul Krugman) 같은 이들은 이번 미국 월가의 공황상태를 가리켜서 ‘공급주의 경제학의 종언’ 이라고 부르고들 있습니다. 시장에서의 실패가 드러났으니, 더 이상 ‘규제를 완화하고, 시장에 맡기는’ 식의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사실 시장이 건전하게 기능하기 위해서는 많은 경우에 공적인 정부의 개입과 적당한 규제가 꼭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장기능으로 적절히 공급을 할 수 없거나 독과점의 위험이 큰 이른바 공공재인 ‘철도, 교통, 항만, 전력, 우편, 수돗물’ 등 이른바 ‘시장의 실패’ 대상들은 과감히 국유화 혹은 공적 생산을 통해서 적절한 통제하에 생산해야만 합니다. 세금도 적절한 정도까지는 올려야하고, 부의 적절한 재분배와 세습의 차단을 위해서 정부가 과감하게 개입해야만 하는 것이 대다수 국민들을 위해서 옳은 일입니다. 레이건과 대처로 대표되는 지난 30년간의 공급주의 경제학 시대는 이제 자본주의의 총본산이라는 미국에서부터 막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미국의 공급주의 경제학을 공부하고 돌아와서 우리나라에서 큰소리를 치고 있는 자칭타칭 ‘전문가’라는 분들은 아직 이런 세계적인 변화의 조류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 주변에 돈 버는데 혈안이 된 ‘금융기술자’들이야 많을지 모르지만, 경제의 흐름에 대해 깊은 식견과 혜안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습니다. 대중매체에 나와서 떠드는 이들도 모두 미시적인 변화를 이야기하지,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세계는 이제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도, 그 조류에서 뒤떨어지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길은 더 이상 없는데도, 아무도 그런 점을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앞으로 세계경제는 당분간 긴 침체기에 접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에도 생각이 있는 이들이 있으니 언젠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올바른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줄여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얼빠진 소리들을 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위정자들을 보면서 우리의 미래가 어둡다고 느끼는 것은 결코 저 혼자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한토마 B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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